'문용직'에 해당되는 글 1건

  1. 2007/05/22 바둑의 발견? 인생의 발견? (3)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바둑의 발견 / 문용직

19x19의 세계가 있다. 바로 바둑판이다.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던 조치훈이 있다. 제자 이창호에게 패한 뒤
'승부사에게 제자란 없다'라고 이야기한 조훈현도 있다.
19줄의 세계는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그렇다면 인생은 전쟁터란 뜻일까?

내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말년 병장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느낌 탓이었을 것이다. 문득 냉랭한 관계였던 아버지와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철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곤 그 창구로써 바둑을 선택했다.
어린시절, 정성스럽게 반상 위에 돌을 배열하던 아버지의 손끝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둑을 알아 갈수록 본래의 목적은 희미해졌고, 난 새로운 차원으로 빠져들었다.
포석과 행마, 그리고 사활은 치열한 삶의 은유였다. 제갈공명과 주유의 수 싸움까진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략과 암투가 난무하는 인생이 판 위에 있었다. 투쟁처럼 격렬하기만 했던 20대와 30대에
바둑은 내게 필드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그리곤 어느 순간 바둑을 잊었다. 영화 속 갱스터의 이야기처럼
'삶도 전쟁터인데, 굳이 반상 위에서까지 전쟁을 하고픈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바둑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정치학 박사이자 프로기사이기도 한 문용직의 저서 <바둑의 발견>은 총칼이 난무하던 바둑판을
순식간에 사색의 공간으로 치환시켜 주었다. 오청원과 기타니의 사유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책의
행간을 쫒으며, 바둑이 보여주고 있는 사려 깊은 인생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승부의 열망은
희미해져갔고, 삶이 지닌 진중한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기술이 아닌 철학을 보여 주겠다'는
기인 기사 후지사와 슈코의 일갈을 그때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팝 컬럼니스트 김태훈>

* 2007년 5월 14일 경향신문 <책읽기 365>.
이올린에 북마크하기(0) 이올린에 추천하기(0)
Posted by jacosmi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