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팀 블로그에 지난 5월 올렸던 글입니다.)

한 동안 팀 블로그가 북적거렸다. 최민식과 그가 출연한 사채 광고에 대한 논쟁이 한적하기가 겨울철 바닷가 같던 이 팀 블로그를 화개장터로 만들어 버렸다. 물론 오픈 블로그를 표방했으니 얼떨결에 터져버린 대박 흥행(without money)에 기쁘기도 했지만(그 관심이 포지티브던 네거티브던 간에), 서슬이 퍼런 댓글들에 영 글쓸 마음이 들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GNP도 늘었고, 아파트도 많아 졌고, 거리에 나가보면 사람들의 옷과 액세서리의 레떼르들도 셋 건너 하나씩은 명품이건만, 왜 아직도 무슨 논쟁만 붙으면 죽을때까지 싸우려 드는지... 영 모를 일이다.
혼자 글 올리느라고 힘들어 했을 김PD와 댓글 다시느라 귀중한 시간 내주신 방문객들에게 이젠 좀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 왜 이런 광고 있잖은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 말해놓고 나니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나도 휴가 생각이 간절하다.

1990년의 어느날, 비디오 숍에 갔다가 별 기대하지 않고 골라온 영화가 한 편 있었다. <아비정전>. <몽콕하문-열혈남아>에 이어 왕가위의 신화가 시작된 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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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모와 양 엄마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비의 슬픈 눈빛, 오랜 갈등 끝에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찾아 갔지만 끝내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우울한 독백. 그리고 이어진 대사 '한 번도 뒤 돌아 보지 않았다. 내게 얼굴을 보여주지 않은 그녀에게 나 역시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간지나는 대사빨에 애써 감정을 숨긴 채 거들먹거리며 걷던 장국영의 뒷 모습, 그리고 동남아시아의 울창한 나무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하긴 그 땐 나 역시 영화 속 아비 만큼이나 예민, 명민(!)하던 시절이니 꽤 오래 잊지 않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건 없으리라. 아무튼 아마도 평생동안 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을 그 슬프디 슬픈 장면에서 사용되었던 곡으로 추정된다...(추정이란 애매모한 단어에는 다시 확인해보지 못했다는 자기 반성이 담겨 있다... 양해의 인사 꾸벅!) <Always in my heart>. 노래 제목에서 다시 한 번 슬퍼진다.

왕가위의 영화를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음악의 선곡이나 특히 영화의 영문제목에서 탁월한 감수성을 발휘하곤 한다. <아비정전-아비 이야기>의 영문제목은 <Days of being wild>이다. '야성의 나날' 쯤 되어보이는 영문제목을 보다보면, 제임스 딘 주연으로 헐리웃에서 만들어졌어도 꽤 괜찮은 작품이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엉뚱한 상상만 한다).

'97년 홍콩 반환 문제를 친모인 중국과 양엄마인 홍콩 사이에서의 갈등으로 풀어낸 <아비정전>은 원래 2부작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전작 <몽콕하문-열혈남아>를 본 제작자들이 백지수표를 위임했다나 어쨌다나... 하지만 <아비정전>은 엄청난 흥행 실패를 기록하고, 대차대조표의 격차에 경끼 일으키신 제작자 행님들은 재빨리 '취소취소'를 외치시며 <아비정전> 2부의 기획을 백지화하기에 이른다(백지수표에서 백지화라... 이 오묘한 말장난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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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한참 후에 거장 칭호 받으며 힘쎄진 왕가위가 <동사서독>이라는 제목으로 <아비정전> 2부의 이야기를 완성했지만, 당시만 해도 심히 상처 받은 불쌍한 배우 한 명 있었다. 바로 양조위 되시겠다. <아비정전>의 그 유명한 장면, 사각 빤쮸바람으로 멋들어지게 맘보 춰주시고 단숨에 청춘 스타로 등극한 장국영을 보며, '<아비정전 2>에선 바로 내 차례다'를 외치셨을 그(<아비정전 2>는 양조위가 주연 예정이었다).

하지만, 2편을 암시하는 영화의 마지막 2분여에 잠깐 출연한 후, 제작이 중단 됨으로 잠시 공황 상태에 빠지셨으리라. 그래도 <아비정전>의 마지막 2분은 진정 걸작이다. 따로 떼어내 뮤직 비디오로 감상해도 모자람이 없는 롱테이크가 아닐 수 없다(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인거... --;;).

천장이 낮은 어느 방, 남루한 생활에도 양복 선과 헤어 스타일에 신경써주시는 양조위씨. 담배를 피워물고 약간 꾸부정한 자세에서도 폼 잃지 않아 주시며, 몇 푼의 현금과 트럼프 카드를 주머니에 집어 넣은 채, 절전을 위해 불끄시며 외출해주시는 그의 모습이란... 20대 초반, 팍팍한 현실에서도 항상 멋진 삶을 꿈꿨던 우리들의 자화상은 아니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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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국영은 거짓말처럼 만우절에 생을 마쳤다. 그리고 영원히 늙지 않는 피터팬이 되어버렸다. 양조위는 <상성/상처받은 도시>를 통해 여전한 미모를 뽐내고 있다(도대체 이 인간의 하루 삼시 세끼 식단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런데 우린... <아비정전>을 손에 든 채 집으로 향하던 그 때가 그립다...

P.S.
1. <아비정전>의 전설적인 그 마지막 장면에서 양조위의 아우라를 완성시켜준 곡 <Jungle drums> 올린다. 찾느라고 힘들었다. 쌓아 놓았던 CD 절반은 무너트리며 찾아냈다. 박수 한 번 주시라~!
2. 양조위는 <아비정전>의 마지막 2분 장면을 수십번도 넘게 찍었다고 한다. 왕가위가 특유의 변태성향(!)을 드러낸 것이다. 더구나 한 방에 가는 롱테이크 장면이었으니... 결국 양조위가 울었다나 어쨌다나... 얼레리 꼴레리...
3.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글쓰다 잊어버렸다... 쩝...

* 첨부되었던 음원은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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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루탄 사이를 누비던 그 옛날의 청춘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이 글은 6월에 팀 블로그에 썼던 글입니다.)

610 항쟁이 벌써 20년이 되었단다. 신문마다 특집으로 당시의 시대 분위기와 현재를 비교하는 기사가 줄을 이었다. 난 87년에 뭘하고 있었더라? ... 고3이었다. 인3이나 산3으로도 해결 안된다는 인생의 암흑기... 더구나 88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재수생 시절까지 더했으니 80년대란 내게 그리 유쾌한 시기는 아니었던 셈이다. 그래서일까? 386의 끝세대 (69년생에 89학번)이면서도 스스로는 90년대가 청춘기였다고 생각하곤 한다.

68세대에겐 전시대에서 건너온 고다르와 트뤼포가 있었고, <관객모독>의 페터 한트케가 있었다. 물론 짐 모리슨, 지미 헨드릭스, 제니스 조플린과 비틀즈도 있었음은 부연이 필요없다. 그렇다면 90년대에 청춘을 보낸 우리세대에겐 무엇이 있었을까? 아마도 무라카미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가 아닐까?

최근 한 문학 평론가가 2000년대 대한민국 문학계의 위기를 진단하며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열광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대충 이런 요지의 평을 남겼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나 깊이는 없고, 단문의 리듬이 만들어낸 싸구려 댄스에 열광한다'
90년대에 나 역시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었기에, 그리고 몇 번이고 반복해 다시 읽을만큼 좋아했기에 잠시 생각에 잠겨야만 했다. 하루키가 그렇게 싸구려였나? 아니면 그 책을 좋아했던 우리가 한심한 세대였다는 뜻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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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90년대 대학생활은 한마디로 뒤죽박죽이었던 시기였다. 학생회에서 간부생활을 하던 운동권이었으며 강남의 전설적 나이트 클럽 월팝에 출석부 찍던 날라리였고, 적성에 맞지 않는 과를 선택한 후유증으로 대학의 담장을 월담해 어디론가 멀리멀리 도망가고 싶던 주변인이었으니 말이다. 그 때 하루키의 소설을 만났다. 후에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목으로 번역되었지만, 내가 읽었던 책은 <상실의 시대>라는 국내명으로 출간된 것이었다.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을 비틀즈의 노래 <Norwegian Wood>에서 가져왔다고 하는데... 사실 곡의 원뜻은 노르웨이산 나무로 만든 가구이다... 아무튼) 도입부에 등장하는, 한 번 빠지면 나올 수 없다는 우물의 은유. 말 없는 소년이 수다쟁이로 변신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한 청춘이 되었다는 슬픈 독백. 사랑하는 사람과 겪는 소통의 부재와 죽음. 그리고 공중전화 박스 안에서 '지금 여기는 어디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물어야만 했던 혼란. 나의 90년대에도 그 모든 것이 있었기에 <변증법적 유물론>과 <강철군화> 옆자리엔 <상실의 시대>가 꼽혀 있어야만 했었다. 나이 쉰이 될때까지 독신을 고집하고 있는 선배 한 명이 <캐스트 어웨이>에서 무인도에 표류한 톰 행크스의 표정 하나까지도 다 이해한다고 말했던 것처럼, 영화든 책이든 혹은 전화기 너머 그녀의 투정이든 자신의 상황과 '딱' 맞아 떨어지는 순간엔 절묘하게 '쪽쪽' 흡수되는 것이니, 90년대의 나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가 그랬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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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를 다녀왔지만 여전한 뒤죽박죽 속에서 끙끙거리던 93년, 막내가 LP로 구입해 놓았던 너바나의 앨범 [Nevermind]를 자장가 삼아 잠들곤 했다. <Come as you are>의 비장한 분위기, <Polly>의 건조한 기타 사운드, 그리고 <Smells like teen spirit>의 분노의 질주가 가져다주는 묘한 쾌감을 만끽했었다. 얼마나 반복해 들었는지 턴테이블의 카트리지 바늘에 긁힌 LP는 앞면과 뒷면이 뚤릴 지경이었다.
그래서 커트 코베인이 닐 영의 음악을 들으며 자살 했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이런 어설픈 비명소리를 내야만 했다. '젠장, 내 청춘도 이제 끝장났군' (지금 생각해 보면 같잖은 똥폼이다)
자다가 일어난듯한 부시시한 머리, 빨래줄에서 막 걷어 입은 듯한 구김많은 셔츠, 계단에도 앉고, 길에서도 자고, 그래서 결국 빵구 난 듯한 청바지, 그리고 폼잡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사운드와 보컬... 너바나는 그 명료한 단순성으로 복잡한 상황에서 허우적 거리던 내 엉덩이에 강렬한 똥침을 날렸던 것이다. 이런 대사와 함께 '이봐 친구 인생 뭐 있어? 그냥 헤드뱅잉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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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간의 대학생활에도 결국 졸업장이라는 증빙서류 한 장을 얻는데 실패한 채 터덜터덜 학교를 제발로 걸어 나왔을 때, 왕가위를 만났다. 물론 그 이전 이미 <몽콕하문-열혈남아>와 <아비정전>으로 첫 인사는 나누었었지만, '음 괜찮은 감독이군' 정도의 감상이었으니 아직 '열렬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시기 상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극장에서 처음 본 그의 영화 <중경삼림>은 상당히 '매혹'적이었다. 몸의 수분을 땀으로 빼내면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다는 금성무의 재기발랄한 독백도 그럴듯 했지만, 역시 후반부 양조위와 왕비(당시에는 왕정문이라고 불리웠다)가 등장한 에피소드는 웃으면서 눈물이 났던, 그래서 거시기에 털 날 것 같던 상황을 만들어 주었으니 말이다.
역시 영화 속 인물들의 관계는 전작 <아비정전>처럼 '97년 홍콩반환이라는 역사적 상황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제도권을 나타내는 경찰 양조위는 매번 어디론가 훌쩍 떠날 수 있는 스튜어디스 여자친구를 부러워한다. <California dream>을 틀어 놓은 왕비의 정서 역시 낙원(이라고 상상하는) 캘리포니아를 동경하며 현재의 그 곳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그녀 역시 스튜어디스가 되어 홍콩을 떠나간다. 물론 영화의 엔딩에서 다시 양조위 곁으로 돌아오지만, 그녀가 다시 떠날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지금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 90년대의 나 역시 지치고 우울한 날들엔 가열찬 투쟁정신을 망각한 채 무조건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으니, 비록 사회에 나와 본 영화라곤 할지라도 영화속 인물들을 이해하는데는 어려움이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학교를 박차고 나온 사회에서도 희망은 인사불성 상태이고, 낙관은 그로기였으니 굳이 옛 기억을 더듬어 볼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하루키와 너바나, 그리고 왕가위의 중경삼림이 있었기에 그 시기를 버틸 수 있었다. 마치 '쟤들 봐, 나보다 더하잖아!'라든가, 아니면 '그래그래 나 같은 인간들이 또 있군' 정도의 위로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정도의 위로만으로도 다시 벌떡 일어설 만큼 정력 세던 시절이니(아, 그 정력 그립다!). 물론 어디론가 떠날 마땅한 곳을 찾지 못했음도 고백하는 것이 솔직할 것이다.

영화 <중경삼림>을 본 많은 사람들이 크랜베리스의 <Dreams>를 리메이크한 왕비의 <몽중인>이나 마마스 앤 파파스의 <California dream>을 떠올린다.  하지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곡은 디나 와싱턴의 <What a difference a day makes>이다. 섹스를 끝낸 후(일 것으로 추정된다... --;;) 양조위가 모형 비행기를 가지고 스튜어디스 여자친구에게 장난을 치는 장면에 수록되었던 곡이다. 불안한 미래의 홍콩을 떠나고 싶은 양조위의 마음이 모형 비행기로 묘사되었던 씬이었다. 그래서일까? 이 음악만 들으면 나 역시 이기동 선생의 말처럼 '어디론가 맬리맬리 떠나고 싶어지니...'

68년도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고, 87년도는 가물가물하다. 그리고 90년대 역시 이미 지나가 버렸다. '역사는 해석의 문제'라는 칼 포퍼의 말을 떠올려 본다면, 같은 시대를 살았다고 하더라도 느낀 것과 기억하는 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한 한 문학 평론가의 혹평도 '그러려니'라는 나의 평소 인생관으로 넘어가려고 한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문득 서글퍼지는 것이 2000년대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 스타크래프트와 블로그(이 글을 블로그에 적고 있음에도...) 등에 별다른 감흥이나 추억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다 나 역시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는 조악한 그래픽과 호전적인 야만의 결합이며 블로그란 서투른 일기장의 다름아니다'라는 망언을 뱉어내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되는 바이다. 그래서 모든 것들은 청춘의 한 때 겪어야 독약처럼 강렬한 맛에 비로소 취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닐까?

P.S.
1.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글쓰다 원래 쓰려고 했던 이야기를 또 잊어버렸다. 아~ 이토록 가난한 기억력이라니...
2. 2010년도의 어느 날, 스타크래프트가 어쩌고, 블로그가 어쩌고 하는 글을 쓰게 되더라도 '그러려니'하고 넘어가 주시길 바란다. 앞서 자백했듯 빈곤한 기억력이 언제 또 도져 망발을 하게 될지 모를 일이니... 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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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t metheny group <(it's just) ta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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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유일한 목표는 빨리 치는 것 따위가 아니라 진짜 멜로디를 뽑아내는 것이다.”



어느 날, 재즈의 창시자 루이 암스트롱에게 후배가 물었다.
"선배님, 재즈란 무엇입니까?"
한 동안 생각에 잠겼던 루이 암스트롱이 대답했다.
"친구, 재즈란 스윙하는 것이라네."
대답이 떨어지자 마자 후배는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스윙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혼자만의 침묵에 잠겼던 루이 암스트롱은 자리를 일어서 bar를 나서며 말했다.
"그걸 알게되면 나에게도 좀 알려주게!"


팝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을 가진 나도, 재즈란 여전히 알 수 없는 무엇이다. 몇 권의 책을 읽고, 음악적 식견이 뛰어난 선배들의 고언을 들을 때면 '아, 재즈란 이런 것이구나!'하는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 때뿐이다. 새로운 재즈 음악을 접하고 그 익숙치 않은 모양새와 난해한 해석에 빠져 들 때가 되면 재즈란 도무지 알 수 없는 또 다른 무엇으로 진화해 가기 때문이다.

팻 메스니의 음악을 처음 들은 것은 20년도 더 된 것 같은 청소년기의 어느 날이었다. 그의 음악을 들려준 선배에게 물었다.
"팻 매스니? 어떤 음악이야?"
리듬에 맞춰 고개를 까닥이던 그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시냇물이 흐르는 냇가에 앉아 집에서부터 정성스럽게 가져간 유리 잔을 조심스럽게 놓고, 맛있는 와인 한 잔을 따르는 기분의 음악..."
지금이나 그 때나 그 선배의 이야기는 해석불능이다. 그러나 팻 메스니의 음악을 듣다보면 가끔, 아주 가끔 그의 느낌이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있다. 음악과 내가 절묘하게 합일치가 되는 날이라고 할까? 그 날들 중의 대부분은 어딘가로 여행을 가는 차안에서 이루어진다. 창문을 열고 미풍에 머리를 날리며, 한 번도 머문적 없는 낯선 풍경을 지나쳐 달리다보면 팻 매스니가 말을 걸어오곤 한다. '어때 친구, 이제 재즈를 좀 이해하겠나?'

1955년(혹은 54년 생으로 알려져 있다.) 생인 팻 메스니는 이미 대가의 경지에 오른 기타리스트이다. 10대 시절, 버클리와 마이애미 대학에서 교수로 활동했을 만큼 그 실력은 일찌기 재즈 음악계에 알려져 있었다. 라일 메이스와의 공동 작업을 통해 예측 불가능한, 그러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그의 음악적 계적은 정통과 퓨전의 틈바구니 어딘가에 위치한 독창적인 것이다. ECM 레이블 시절을 통해 천재적 역량을 과시하면서부터 재즈 팬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지만, 대가의 일대기가 그렇듯 다양한 변주와 변신을 통해 폭 넓은 스펙트럼을 들려준다.

그의 방대한 발표작들 중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음반은 '87년 Geffen 레이블 시절 발표한 [(still life) takling]이다. 브라질 음악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겨 있는 이 음반은 이어폰을 귀에 꼽는 순간 지구 반대편의 열대림 가득한 원시의 자연으로 나를 데려다 준다. 보사노바와 삼바가 있는 나라. 호나우지뉴의 현란한 개인기와 끝없이 펼쳐진 사탕수수밭이 있는 나라. 앨범의 수록곡 중 <last train home>은 수 많은 프로그램의 시그널로 사용될 만큼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작품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앨범에 4번 째로 담긴 <(it's just) talk>이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누군가가, 아니면 낯선 풍경들이 말을 걸어오는 듯한 이 곡은 인천 공항의 트랩을 오르는 순간부터 언제나 내 mp3에서 플래이 되는 곡이다. 여행을 위한 충실한 동반자라고 할까?

재즈란 이해하기 힘든 음악이다. 그 구성이 그렇고, 그 진화의 단계들이 그렇다. 그러나 그렇기에 재즈란 매력적인 음악이다. 예측 가능한 서술 구조와 뻔한 결론에 식상한 우리들을 오즈를 찾아 떠나는 도로시처럼 만들어 줄 수 있는 음악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 선택은 여러분들의 몫이겠지만 말이다.    


 
 
 
 
Posted by jacosm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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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이별을 고한다. 그리고 이별의 순간엔 언제나 최후의 통첩 같은 한마디가 던져진다.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 대중가요의 노랫말 같은 이 구절은 이별을 통보하는 클래식 중의 하나다. 고전적 문장이 아닌 독창성을 발휘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학을 전공했다면 이런 식이다. “모든 것들이 꿈만 같았어.” 수학과 졸업생이라면, “넌 언제나 답이 나오지 않는 아이였어.” 세일즈맨 4년차 대리 직급이라면, “더 이상 너에게 팔 것이 남아 있지 않아.” 과장된 이야기라고 여기겠지만, 헤어짐 속에는 그 헤어짐의 숫자만큼 다양한 말들이 등장한다. 때때로 이 마지막 말들은 문신처럼 머리에 남아 꽤 오랫동안 사람들을 괴롭힌다. 단순히 ‘우리 사이가 이젠 끝난 거야.’라는 의미만을 담고 있다면 상관없다. 문제는 해석불가의 이상한 문구들이 사용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널 처음 만난 날부터 이런 날이 올 걸 알았어.” 도대체 무슨 뜻일까? 처음 만난 날부터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 분이 오셔서 ‘네 앞의 저 사람과는 헤어질 팔자야!’라고 계시라도 주셨다는 것일까? 또 다른 예, 한 여자가 한 남자에게 말한다. “넌 내가 마음을 준 유일한 남자였어.”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자신의 인생에 유일한 남자였다는 것인가? 만난 남자는 많았지만 마음까지 열었던 것이 처음이라는 것일까? 말 그대로 마지막으로 남긴 이야기니 그 명확한 의미를 상대에게 물어 볼 기회도 없다.

라디오 방송에서 연애 상담 코너를 진행하다보면, 종종 그와 그녀의 마지막 말을 해석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온다. 한 때나마 사랑했던 사람이니, 그가 남겨 놓은 알쏭달쏭한 대사의 행간을 읽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 해석이 만만치가 않다. 2차 대전 당시 독일군의 이니그마 암호보다 더 헷갈리는 것이 과거 연인의 마지막 한마디다. 직설적인 화법인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 은유적인 표현들로 이루어져 독해를 방해하고, 낭만적인 표현이라도 플래쉬 백을 통해 의미를 가르쳐주지 않으니 불친절하긴 마찬가지다. 사람이란 ‘상대에게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에 집착하는 존재이다. 그러니 대상은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한마디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카페에서 물 잔을 집어 던지며 감정을 몽땅 쏟아내며 헤어진 것이 아니라면 언제나 폼 나는 대사가 이별에 등장한다. 아쉬움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화려한 단어들의 등장이 멋쩍을 만큼 그 뜻은 의외로 싱거울 만큼 간단하다. 끝까지 상대에게 멋있어 보이고 싶어 만들어낸 의미 없는 치장을 걷어내면, ‘내가 먼저 이별을 고했지만, 미워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흠담은 하지 말아 달라’는 소박한(!) 바람이 있을 뿐, ‘우린 끝이야’라는 뜻의 동어반복인 것이다. “헤어지지만 너만큼 사랑한 사람은 다시 만나지 못할 거야.”라는 이야기는 “모두 다 잘 마무린 된 거라고. 알지?” 이상의 의미는 없다. “지금은 떠나지만, 언젠간 널 다시 찾아갈 거야.”의 뜻은 “나 이제 가도 되지?”의 변형 버전이다.

영화 <러브 스토리>에서 여주인공 알리 맥그로우는 불치병으로 죽어가며 라이언 오닐에게 이런 마지막 인사말을 남긴다. ‘사랑이란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는 것.’ 우리 아버지 세대에 속하는 연인들은 이 대사에 눈물을 흘렸다. 죽음을 앞두고 있으면서도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화법을 구사할 수 있단 말인가? 대사에 감동받은 사람들은 극장 문을 나서며 나름대로의 이별 대사들을 연습했다. 그 결과로 오늘날의 고전, ‘좋은 사람 만나길 바래.’나 ‘행복해라.’ 등이 이별 지침서에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알리 맥그로우의 대사 역시 ‘나 이제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다’에 불과하니 그 아류도 앞의 의미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상담을 요청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해주는 말이 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말은 잊어라. 그 말엔 아무런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연애라는 한 권의 책을 끝내며 그저 멋진 싸인을 남겨두길 원하는 것뿐이다. 현란한 단어들이 사용되는 것은 이별의 아쉬움 때문이며 지난 시간을 영화처럼 멋지게 포장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결국 두 사람의 만남과 자신을 미화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의 의미를 알 수 없는 마지막 말이 몇 년 동안 귓가를 맴돌았어요. 그는 왜 이런 잔인한 행동을 하고 떠난 거죠?” 이런 물음을 던지고 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앞선 이야기들이 이제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당신이 던진 말처럼 그의 말에도 별 뜻 담겨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 둔다면, 뒤 돌아섬이 조금은 더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 10월 11일 조선일보 칼럼 김태훈의 러브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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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함께하는 행복한 낮잠? 고호, The siesta


몇 달 전 한 여성지와 인터뷰를 했었다. 기자가 물었다. “연애 카운슬러이면서 자신은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대답은 간단했다. “가끔은 지겨운 연애보다 토요일의 낮잠이 더 달콤할 때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연애는 짜릿한 것이며, 홀로되는 것은 처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동의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이야기가 틀릴 때도 있다. 사랑과 연애가 족쇄 같은 공포로 다가와, 고독이라는 자유로 무작정 도망치고 싶을 때가.


서른 살을 넘긴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4년 가까이 사귄 여자 친구와 헤어져 첫 주말을 맞았었다. 이론상으론 혼자된 외로움에 고독이 몸부림치는 시간이어야 했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였다. 하루 종일 여유 있게 TV 시청을 즐겼고, 한 주 동안의 피로를 행복한 낮잠으로 풀어버렸었다. 그리곤 깨달았다. 그녀와 연애를 한 4년 동안, 단 한 번도 주말을 나 혼자만을 위해 사용했던 적이 없었다는 것을. 연애라는 건 일종의 전속계약이다. 원하지 않아도 경기에 출장해야하는 프로 야구 선수 같은 것이다. “오늘 우리 뭐할까?”라는 기대가 잔뜩 담겨 있는 상대의 목소리에 “나 너무 피곤해서 오늘은 쉴래.”라고 말할 용기가 쉽사리 생기지 않는 것이다. 엄지손가락이 곪아가지만 팀의 우승을 위해 경기에 출장하는 이승엽 선수 같다고 할까. 오랜 연애가 끝난 자리에 비로소 유태인들의 안식년 같은 휴식이 찾아왔던 순간, ‘연애보다 더 행복한 것은 토요일의 낮잠’이라는 진리를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만큼 ‘사랑’이라는 단어로 상대를 괴롭히는 사람들도 보기 드물다. 세대는 바뀌어도 여기엔 예외가 별로 없다. 사랑하는 사이가 되면, 연애에 있어 곧 의무와 책임을 강요하기 시작한다. 그것도 일방적으로 강요된 이상한 형태로. 흔히 지명 방어전이라고 부를 만큼 데이트의 횟수는 일정 기준치를 채워야 하고, 더불어 상대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통제하는 상황이 흔하게 벌어지는 것이다. 라디오로 배달되는 많은 사연 중엔 아무리 연인관계라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비일비재하다. 누구나 경험했을 만한 간단한 예론, 먼저 여자 친구의 옷차림에 간섭하는 남자. 이런 식이다. “너 나를 만나는 동안은 미니스커트와 배꼽티는 꿈도 꾸지마라!” 요새 그런 남자들이 어디 있냐고? 생각보다 많다. 사연을 듣고, ‘제 남자 친구도 그래요.’라는 동의의 댓글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일반적인 예를 하나 더 들어본다. 술자리를 갖다보면 자신이 연애 중임을 드러내는 사람들이 있다. 멤버 중의 한 명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상대는 여자친구. “어, 친구들과 술 한 잔 하고 있어.” 곧이어 전화기를 들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곤 한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 행복한 대화를 나누기 위해? 아니다. 돌아온 남자의 표정엔 잔뜩 짜증이 나있다.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늦은 술자리에 대한 여자 친구의 통제가 있었던 것을. ‘너 지금 몇 신데 아직 집에 가지 않았어!’라는 비난에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하지?’라는 의문이 생기는 순간일 것이다.


존 파울스의 <콜렉터>에는 짝사랑하는 여자를 지하실에 감금하는 엽기적인 남자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독점하려는 이상심리가 섬뜩하게 담겨 있는 작품이다. 80년대에 나왔던 <복싱 헬레나>라는 영화도 있다. 이 영화는 좀 더 극단적이다. 여자를 자신에게서 떠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팔다리를 절단하는 장면까지 있으니 말이다. 문학과 영화의 과장된 내용에 야유를 보낼 수도 있지만, 정도의 순화가 있을 뿐, 사랑은 연애 단계에서 변질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신세대들의 연애 패턴을 살펴보다 경악했던 사실이 하나 있다. 상대에게 전달되는 문자 메시지와 이메일을 확인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연애를 핑계로 극히 개인적인 영역의 사건들까지 공개하도록 강요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의 대상, 혹은 연애의 파트너가 된다는 것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빅 브러더’의 지위를 획득하는 것이 된 것이다. 이 쯤 되면 연애는 공포가 되어버린다. 물론 간섭과 통제를 관심과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이 연애이다. 그러나 열정이 사그라지면, 본래의 이름인 간섭과 통제로 돌아가 괴로움이 고개를 든다.


핸드폰을 잠시 차에다 두고 저녁 식사를 하고 온 사이, 부재중 전화 30통이라는 액정 화면을 확인하는 것은 끔찍한 경험이다. “너 지금 어디야? 핸드폰 카메라로 주변을 비춰봐.”라는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심지어 정말 집에 간 것인지를 알기 위해 집 전화로 다시 전화를 걸어보라고 하는 것은 모멸감마저 느끼게 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것이 사랑이고 연애의 방법론이라고 말한다. 토요일 오후, 혼자만의 낮잠이 무척이나 행복한 나로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다. 


* 9월 19일 조선일보 칼럼 김태훈의 러브 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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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국내 음반시장의 유일한 돌파구?

 

얼마 전부터 음악계에는 서태지의 컴백에 대한 뉴스가 간간이 올라오고 있다. 구체적인 일정이나 뚜렷한 근거를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소문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무엇인가 움직임(!)이 잡힌 것 아니냐는 희망적인 해석이 뒤를 잇는다. 팬들은 물론이려니와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음악관계자들까지도 그의 컴백을 기대하고 있는 것은 유사 이래 최악이라는 음반 시장의 돌파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태지의 2004년 발표 앨범 [로보트]가 50만장에 가까운 판매를 기록하며 숨통을 틔워 주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김건모를 통해 100만장 음반 시대를 열었던 것이 불과 10여 년 전 일인데, 2007년 상반기 10만장 이상 판매된 앨범이 단 2장이라는 시장 조사는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리며 축소되어온 음반 시장이기에 이젠 익숙해 질만도 하지만, 그래도 회생의 불씨는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이 음반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딜레마이다.


음반 산업, 아니 나아가서 음악 산업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것이 있다. 바로 불법 MP3 다운로드이다. 아티스트들에게 돌아가야 할 정당한 경제적 분배를 방해함으로 창작 의욕을 저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몇 달 전, 영국의 팝 아티스트 엘튼 존은 ‘5년 만 인터넷을 폐쇄하면 명곡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 불법 MP3가 한국이나 영국이나 문제는 문제인 것이다. 그러나 곡을 만드는 작곡, 작사가들과 아티스트들 사이에선 또 다른 볼 멘 소리가 나온다.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정식 유통되고 있는 MP3의 실현료와 저작권료에 대한 부분이다. 1,000원 안팎으로 사용료를 지불하는 핸드폰 통화 대기음의 경우 곡을 만든 작곡, 작사가들은 9%, 그리고 연주와 노래를 한 아티스트들은 4~6% 정도를 받는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일단은 유통 경로를 맡고 있는 대행업체들과 이동 통신 업체들의 몫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여러 번 거론된 것들이니 다시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픈 얘기이고, 나머지 가려진 부분은 그나마 작곡, 작사가와 아티스트들이 받아야 할 몫마저 제대로 지급이 안 된다는 사실이다. 실연자 협회와 저작권 협회에 대한 불만이 높은 것이다.
TV에서 방영된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의 주제곡을 작사하고, <주몽>의 주제곡을 작곡한 후배는 내게 이런 투정을 한 적이 있다. “정산에만 1년이 넘게 걸리고, 그 정산마저도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지 않은 채 덜렁 얼마 정도의 돈을 보내주는 것으로 끝이에요. 웃기는 건, 자세한 내용을 알려달라고 해도 전산화가 되어 있지 않다는 한심한 핑계만 대고 있다니까요!” 이런 불만은 내 주변의 작곡, 작사가와 가수들 거의 모두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한마디로 돈은 걷히지만 그 돈이 실연자와 저작권자에게 나누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공연한 비밀처럼 도는 이야기엔 이런 것도 있다. ‘매일 전화해서 항의를 하면 6개월, 대충 독촉을 하면 1년, 그리고 그냥 기다리면 언제 실연료와 저작권료를 받을지 모른다.’ 톱 아티스트의 경우 받아야 할 돈이 몇 억은 훌쩍 넘는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농담반 진담반이지만, 1년이 넘도록 지급이 미루어지고 있다면 그 이자 수익도 마땅히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


곡을 만들고 연주, 노래하는 아티스트들은 언제 받을지 모르는, 더구나 덤핑 할인도 불가능한 어음을 받고 있는 셈이다. 토론 프로그램에서 불법 다운로드를 이야기할 때 마다, 가장 큰 목소리로 음악 시장을 망치는 불법 운운하는 실연자 협회와 저작권 협회 사람들에게 알려드리고 싶다. 불법 다운로드의 문제 이전에 아티스트들의 창작 의욕을 가장 먼저 저해시키는 것은 실연료와 저작권료의 비정상적인 지급 형태라는 것을. 자신들의 직무 유기를 먼저 고치는 것이 음악 산업을 활성화 시킬 수 있는 가장 쉬운 첫 걸음이라는 것을 왜 그 분들만 모르는 걸까.  

* 8월 경향신문 오피니언 판에 실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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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나이다 보니, 몇 년 전부터 낯선 사람과 인사를 나눈 뒤 5분쯤 지나 서로 화제가 떨어지면 이런 질문을 받게 된다. “결혼은 하셨나요?” 아니라는 내 대답엔 어김없이 추가 질문이 돌아온다. “왜 아직 안하셨나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도 이런 질문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도대체 왜 장가를 안가냐?” 다년간에 걸쳐 개발된 나의 역공은 이렇다. “사람은 원래 혼자 태어나 혼자 살아가지 않았나? 만약에 누군가가 결혼을 하겠다고 이야기 한다면, 그 사람에게 도대체 왜 지금까지 쭉 혼자사시다가 결혼이라는 변화를 택하시게 된 건가요라고 물어봐야 논리적으로 옳은 것이 아닐까?”


며칠 전 한 공중파 TV의 토크쇼에 패널로 출연했었다. 그 날의 이야기는 노총각, 노처녀와 노총각, 노처녀 자식을 둔 부모들의 입장에 관한 것이었다. 프로그램의 애초 의도는 양측의 입장이 가진 차이를 들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자, 어머니들의 기세에 눌린 노총각, 노처녀 패널들은 괜찮은 변명 한 번 날려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수세에 몰렸다. 방청객까지 아주머니들이 대부분이었으니 그 분위기를 대충 짐작은 하시리라. 어찌되었건 심각한 토론 프로그램은 아니었으니 웃고 떠드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하지만 녹화를 끝내고 방송국을 나서는 순간 익숙한 의문이 다시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은 왜 남들의 결혼에 그토록 관심이 많을 걸까?’


팝 음악 칼럼니스트라는 직업상 해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많다. 긴 여행 동안 옆 좌석의 외국인들과 가끔 대화를 나누게 되지만, 단 한 번도 “결혼을 왜 안했나요?”라는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다. 오히려 짧은 영어 탓에 아는 단어를 총 동원해야 하는 내 입에서 종종 이런 질문이 나올 때가 있다. 영국행 비행기에 탔을 때, 무례한(!) 내 질문에 나이 쉰을 훌쩍 넘긴 듯 한 영국인은 이렇게 답했다. “글쎄요. 혼자 사는 게 편하다보니 결혼에 대해선 심각하게 생각했던 적이 없는 것 같군요. 대신 일 년에 두 번은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자동차를 좋아하다 보니 스포츠카를 세 대 가지고 있습니다” 너무도 여유롭게 느껴지던 그 중년 영국인의 대답에 내가 얼마나 생각 없는 질문을 던졌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결혼은 선택의 문제이며, 더구나 그 결정은 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 다는 것을.


난 독신주의를 부르짖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일정한 나이가 되면 결혼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다. 그래서 매년 설문조사 기관이 발표하는 결혼 적령기에 관한 사회의식 조사를 보면 씁쓸해질 때가 있다. 남자 31살, 여자 29살이라는 평균을 추출하고 은밀한 사회적 압력을 가해오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의 결혼은 현실이란 땅에서 발을 띤 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 20대 초반에 이미 결혼의 경제적 조건을 갖춘 사람도 있겠지만, 나이 마흔이 되도록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이들을 대하는 태도는 언제나 똑같다. “왜 결혼 안하셨어요?” 이 질문 속엔 상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나 이해 따윈 담겨 있지 않다.


결혼을 통한 건강한 가족의 생성이 사회를 유지하는 최소한의 조건임은 알고 있다. 그렇다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가야한다는 식의 사회적 통념의 마지노선을 나이에 그어 놓고 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일종의 폭력이 아닐까? 개인이 가진 상황이나 가치관은 배려하지 않은 채, 상처가 될지도 모르는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던지는 문화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다.


누군가에게 결혼을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결혼에 관심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돌아서면 잊어버릴 상투적인 인사말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는 것을. 스무 살을 넘겨 성인이라는 자격증을 받았다면, 결혼은 그 당사자에게 맡기는 편한(!) 세상을 꿈꿔본다.


 * 6월 1일 경향신문 오피니언 판에 실었던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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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부터 흐리더니, 하루종일 비가 온다.
귀찮은 일은 딱 질색인 성격이라, 눈과 비에는 언제나 짜증이 난다.
우산을 쓰기도 귀찮고, 뿌옇게 김이 서린 차창 때문에 운전에 방해를 받는 것도 싫다.

모처럼 스케줄이 없는 휴일이라고 느긋했는데,
뒤늦게 소득 신고 문제로 세무사와 만나기로한 약속이 떠올랐다.
차에 올라 차창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며 한 30분쯤 동부 간선도로를 달렸을까?
문득 옆좌석에서 굴러다니고 있는 CD 몇 장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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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on't Be Soon Befor Long

5년 만에 신보를 발표한 마룬 파이브(Maroon 5)의 앨범
[It Won't Be Soon Before Long]을 플래이어에 걸었다.
첫 트랙 <If I Never See Your Face Again>을 시작으로
딱 마룬 파이브 스타일의 곡들이 앨범을 채우고 있다.
록과 소울, 소울 펑키와 팝, 그리고 그루브...

마룬 파이브의 새로운 음악은 전작 [Songs About Jane]에 비해
달라 보이지 않는다.

아담 레빈의 목소리는 여전히 슬프게 들린다.
젊은 날에만 느낄 수 있는 눈물 몇 방울이 그의 목소리에서 느껴진다.
<에덴의 동쪽>에서 아버지에게 무시당하던 제임스 딘의 눈빛같은 목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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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es Dean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현대화했던 <에덴의 동쪽>.
제임스 딘은 연기가 아닌 자신의 이야기를 눈빛에 담아 보여줬다.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성장한 그였기에
고작 20대 초반의 신인배우였음에도 그런 눈빛이 가능했던 것은 아닐까?
사랑했던 연인 피아 안젤리와의 헤어짐의 슬픔도
그 눈빛의 어딘가에 있었을 것이다.



빛나는 청춘의 한 때를 연기한 알랑 들롱 역시, <태양은 가득히>에서 바로 그 눈빛을 보여주었다.

Plein Soleil

아무 것도 갖지 못한,
그래서 모든 것을  꿈꾸던 그의 눈빛은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너무도 슬프게 보였었다.
우연히 친구와 함께 들렸던 칸느에서 영화배우로 픽업되었지만,
정치권과의 스캔들로 얼룩진 데뷔 당시를 생각하면,
그의 슬픈 눈빛에도 분명한 이유가 있었으리라
 

알 수 없는 미래, 그리고 꿈꾸는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본능적으로 알기에, 
젊은 날은 언제나 슬프다.


빗방울 소리와 자동차의 규칙적인 엔진 소음, 그리고 마룬 파이브의 <Nothing Lasts Forever>는
20대에는 결코 느껴본 적 없는, 아니 분명 느꼈겠지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 그 슬픔을
집으로 돌아오는 길까지 내내 들려주었다.

마룬 파이브의 5년 만의 앨범이 전작과 똑같은 정서를 훌륭히 담아 냈다는 것은
그들이 아직 젊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하지만, 십여 년을 잊고 있던 그 느낌이 왜 갑자기 내게 돌아온 걸까?

전과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들리는 빗방울 소리를 들으며 혼자 중얼거렸다.
'아마도... 날씨 탓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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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발견 / 문용직

19x19의 세계가 있다. 바로 바둑판이다.
'목숨을 걸고 둔다'고 했던 조치훈이 있다. 제자 이창호에게 패한 뒤
'승부사에게 제자란 없다'라고 이야기한 조훈현도 있다.
19줄의 세계는 흔히 인생에 비유된다. 그렇다면 인생은 전쟁터란 뜻일까?

내가 처음 바둑을 배운 것은 말년 병장 시절이었다. 나이를 먹어간다는
느낌 탓이었을 것이다. 문득 냉랭한 관계였던 아버지와 소통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철든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그리곤 그 창구로써 바둑을 선택했다.
어린시절, 정성스럽게 반상 위에 돌을 배열하던 아버지의 손끝이 기억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둑을 알아 갈수록 본래의 목적은 희미해졌고, 난 새로운 차원으로 빠져들었다.
포석과 행마, 그리고 사활은 치열한 삶의 은유였다. 제갈공명과 주유의 수 싸움까진 이르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략과 암투가 난무하는 인생이 판 위에 있었다. 투쟁처럼 격렬하기만 했던 20대와 30대에
바둑은 내게 필드 매뉴얼이었던 셈이다. 그리곤 어느 순간 바둑을 잊었다. 영화 속 갱스터의 이야기처럼
'삶도 전쟁터인데, 굳이 반상 위에서까지 전쟁을 하고픈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바둑의 발견>이라는 책을 발견(!)한 것은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뒤였다.
정치학 박사이자 프로기사이기도 한 문용직의 저서 <바둑의 발견>은 총칼이 난무하던 바둑판을
순식간에 사색의 공간으로 치환시켜 주었다. 오청원과 기타니의 사유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책의
행간을 쫒으며, 바둑이 보여주고 있는 사려 깊은 인생관에 매료되기 시작했다. 승부의 열망은
희미해져갔고, 삶이 지닌 진중한 맛이 혀끝에 느껴졌다. '기술이 아닌 철학을 보여 주겠다'는
기인 기사 후지사와 슈코의 일갈을 그때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팝 컬럼니스트 김태훈>

* 2007년 5월 14일 경향신문 <책읽기 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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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이전,
이미 현재 수준의 저음을 낼 수 있었다는 전설의 내 보이스는
극 저 음역대의 반옥타브안에서 왔다갔다하는
신기한 재주를 선보이곤 한다.
덕분에 교회에서 찬송가 한 소절을 부르는 데도 헉헉거려야 할 만큼
실용적이질 못하니,
때때로 얇고 고음의 미성을 내는 남성 아티스트들의 목소리가
부럽워 질때가 있다.

조지 마이클(George Michael)의 <Kissing A Fool>이나
맥스웰(Maxwell)의 <Welcome> 수준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가끔은 간드러지는 미성으로 'I love you' 한 번
멋지게 날려 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보다 훨씬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남들에겐 '뭐 그런걸 가지고...'라는 식의 조소거리겠지만
프란세트 팍토의 말처럼,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갖지 못한 걸 욕망하는 것' 아니겠는가?
(이승환의 명곡 <덩크 슛>을 들어보시라~)

어찌되었건,
연일 계속되는 음주흡연에 목에 염증까지 생겼다는 진단을 받아
목소리는 계속해서 초-극 저음대로 하향 운행중이시다.
날씨는 더워지는데...
여름은 저음과 어울리지 않는 계절이니 당분간 썰은 좀 자제하려고 한다.

싱숭생숭한 아침에 기분전환용 비타민으로 듣다가
여러분도 퀵퀵 슬로우의 경쾌한 필링 한 번 느껴보시라고  
한 곡 올리고 간다.

남자 알리시야 키스(Alicia Keys)라는 개성 없는 호칭이 맘엔 안들지만,
음악은 나쁘지 않다.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의 싱어 송라이터 로빈 씨케(Robin Thicke)의
<Lost Withou U>... 네오 소울(Neo soul) 스타일이니
블루 아이드 소울(Blue-eyed soul) 뮤지션으로 분류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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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in Thicke



중력이 느껴지지 않는 닭 깃털 목소리의 주인공
로빈 씨케군을 소개한다.
잘 생긴 얼굴에... 감미로운 보이스까지...
음... 혹시 게이?
(질투에 눈 먼 팝 컬럼니스트의 엉뚱한 시비를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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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acosmile